2010년 3월 30일 화요일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황성수, <현미밥 채식>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김연수, <꾿빠이,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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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배우가 완벽하게 무대 인물로 바뀌었을 때, 우리는 그 무대 인물에게서 배우를 분리해낼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그 무대 인물을 가리켜 가상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상의 존재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무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무대 위에서 그 배우는 사라진다.
백운산으로 이르는 오솔길로 한참 걷다가 후박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봤다. 지형과 지도로 짐작건대 능선으로 바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정상에 다다르고 싶었던 나는 그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약초 캐러 다니는 길인 듯, 한 500m쯤 가서 그 길은 끊겼다. 길이 끊어진 그 곳은 가파르긴 해도 바로 능선 아래쪽이었다. 나는 능선을 향해 필사적으로 올라갔다. 한 한 시간을 걸었을까, 능선에 이르러 한숨을 내쉬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어가다 보니 후박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이 보였다.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온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산악인들이 흔히 링반델룽이라고 말하는 경험이었다. 다시 지도를 펼치고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지도 상에서 되짚어갈 수 없았다.
파스칼은 종교적인 신앙심을 수학 공식으로 남겼다. 한 사람이 선행을 쌓아서 천국으로 들어갈 확률은 아무리 작다 해도 유한한 값을 가진다. 반면에 종교가 보장하는 가치는 무한하다. 이 둘을 곱하면 무한한 기대값이 나온다. 그러기에 명민한 도박꾼이라면 누구라도 종교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 <데드마스크>
탐침하듯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저처럼 광활한 운명의 땅에 드리우며 미래를 예측한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형성시킨다. 운명이 아무리 광대하고 폭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만은 그 운명과 맞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맞선다고 할 때, 맞서는 그 대상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번이라도 전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의지가 맞서는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의지 자체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끊임없이 남빛의 바다를 하얀 물보라로 바꾸는 뱃길 주변에서는 아무리 해도 당장 대양의 권태로운 푸른빛이 보이지 않듯이 인간의 의지 역시 삶의 여러 굴곡 중 하나일지 모른다. 때로 파도가 치고 남빛 대양의 한켠이 하얀 물보라로 부서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일 뿐이다. 운명한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실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 <잃어버린 꽃>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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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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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쉽게 위안받을 생각하지 말고 삶을 끝까지 쫓아가란 말이야!"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리 선생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그는 합리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려는 생각이 결국에는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 선생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가짜 여권을 사들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게 예정됐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렇다면 다른 이유를 찾았을 것이라는 뜻에서다. 결국 인생이란 리 선생의 공책들처럼 단 한 번 씌어지는 게 아니라 매순간 고쳐지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논리적으로 회고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예견할 수는 없다는 것.
-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리 선생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그는 합리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려는 생각이 결국에는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 선생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가짜 여권을 사들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게 예정됐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렇다면 다른 이유를 찾았을 것이라는 뜻에서다. 결국 인생이란 리 선생의 공책들처럼 단 한 번 씌어지는 게 아니라 매순간 고쳐지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논리적으로 회고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예견할 수는 없다는 것.
-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알래스카 코르도바에 마리 스미스라는 에야크 인디언이 살아. 이 지구상에서 에야크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인간이야. 사람들이 그 소감을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대. '그게 왜 나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건지 나는 몰라요. 분명한 건 마음이 아프다는 거죠. 정말 마음이 아파요.' 듣는 사람이 없으면 말하는 사람도 없어. 세계는 침묵이야. 암흑이고."
- <달로 간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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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타, 차세대 오다기리 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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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고있는 일본 드라마가 <라스트프렌즈>다. <구구는 고양이다>에서 테로와 비슷한 고양이를 안고 다녀서 얼굴을 익힌 우에노 쥬리나 아이바 마사키와 사귄다는 미즈카와 마사미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배우는 단연 에이타다. 그러고보니 <사쿠란>에 나왔었구나.
굉장히 잘생겼다거나 몸매가 훌륭한 것 아니지만 일관된 존재감이 있고, 연기력도 괜찮다. 여기에 反마초적 섬세함, 조용하고 울림있는 목소리, 히피 스타일, 존재의 불안을 드러내는 표정들이 합쳐져 오다기리 조를 떠올리게 한다. 잘 성장하면 오다기리 조 같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라나?
2010년 3월 9일 화요일
2010년 3월 6일 토요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9월호
Riskology (리스크學)
인간 사회가 갈수록 늘어나는 유행병들을 담아내는 저장고 구실을 할수록 우리는 인간 종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권력과 상대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셸 푸코가 말한 것보다 더욱 명확한 보편적 바이오 권력이 그것이다. (- 갈리마르, <앎의 의미>, 1976)
인간 사회가 갈수록 늘어나는 유행병들을 담아내는 저장고 구실을 할수록 우리는 인간 종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권력과 상대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셸 푸코가 말한 것보다 더욱 명확한 보편적 바이오 권력이 그것이다. (- 갈리마르, <앎의 의미>, 1976)
2010년 3월 3일 수요일
일본 드라마?
<유성의 인연>을 보고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딱히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미뤄두었다. <유성의 인연>을
비롯해, 일본 드라마들은 나에게 조금 답답하고 미진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더욱이 일본 드라마는 10편이면 끝나기 때문에, 즐기는 건 좋으나, 언제나 나에게 '뭔가 2% 부족한데' 라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 드라마에 비해 시청자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약하다고나 할까.
특유의 가벼움과 유머감각, 황당하고 단순한 전개는 일본 드라마의 매력임과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하얀 거탑>, <그들이 사는 세상> 혹은 <The L Word>, <The West Wing>과 같이 캐릭터와 스토리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을 즐기는 나로서는 일본 드라마를 진심으로 '즐기기'가 힘들다.
마츠모토 준이야 그럭저럭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럭저럭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보면 되지만, 쟈니스 중에서도 연기 잘한다고 정평이 난, 클리트 이스트우드의 극찬까지 받았던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경우, '이게 잘하는 거 맞지?' 라는 의심아닌 의심과 함께 보게 된다. <유성의 인연>에서도 잘 하는 것 같긴 한데, 한국이나 헐리우드의 영화/ 드라마처럼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콩트도 했다가, 코미디도 했다가, 상황극도 했다가 하니 이런 상황에서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 각 장면에 맞게 캐릭터를 재빨리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해서 변화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캐릭터의 감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 (적어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시청자에게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 헷갈리는 것이다. 더더욱 니노의 경우, 버라이어티의 이미지가 나에게 강하게 남아있어서 몰입이 더더욱 힘들었다.
특유의 가벼움과 유머감각, 황당하고 단순한 전개는 일본 드라마의 매력임과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하얀 거탑>, <그들이 사는 세상> 혹은 <The L Word>, <The West Wing>과 같이 캐릭터와 스토리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을 즐기는 나로서는 일본 드라마를 진심으로 '즐기기'가 힘들다.
마츠모토 준이야 그럭저럭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럭저럭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보면 되지만, 쟈니스 중에서도 연기 잘한다고 정평이 난, 클리트 이스트우드의 극찬까지 받았던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경우, '이게 잘하는 거 맞지?' 라는 의심아닌 의심과 함께 보게 된다. <유성의 인연>에서도 잘 하는 것 같긴 한데, 한국이나 헐리우드의 영화/ 드라마처럼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콩트도 했다가, 코미디도 했다가, 상황극도 했다가 하니 이런 상황에서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 각 장면에 맞게 캐릭터를 재빨리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해서 변화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캐릭터의 감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 (적어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시청자에게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 헷갈리는 것이다. 더더욱 니노의 경우, 버라이어티의 이미지가 나에게 강하게 남아있어서 몰입이 더더욱 힘들었다.
2010년 3월 2일 화요일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행복의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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