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0일 화요일

<리영희 프리즘: 우리 시대의 교양>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공저
이 책은 리영희의 팔순(2009년 12월 2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일방적인 존경과 흠모를 보내는 보통의 헌정 도서와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리영희의 의미와 영향력을 되새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리영희를 통해서, 리영희가 지녔던 교양의 힘을 매개로 새로운 교양 목록을 10명의 저자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리영희는 새로운 교양을 촉발하는 원재료이고, 다양한 교양의 목록을 묶어주는 고리의 역할을 한다. 또 서문을 쓴 홍세화를 필두로, 리영희를 사상의 스승으로 모시는 70,80년대 학번부터 리영희의 제자가 아니었다고 밝히는 90년대 학번, 20대 논객으로 주목받는 2000년대 학번까지 세대를 넘어선 다양한 필자군으로 구성함으로써, 리영희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책의 저자들은 리영희를 프리즘으로 삼아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다른 세상, 다른 삶을 위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부터(고병권), 책 읽기(천정환), 전쟁(김동춘), 종교(이찬수), 영어 공부(오길영), 지식인(이대근), 기자(안수찬), 청년 세대(한윤형)에 이르기까지 리영희를 매개로 우리 시대 교양의 기초를 다짐으로써 깨어 있고자 한 청춘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였고, 알아야 할 교양의 첫 번째 목록이었던 리영희를 되새기고 있다.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황성수, <현미밥 채식>


현미밥 채식
황성수
MBC스페셜 '목숨 걸고 편식하다', '편식으로 고혈압잡기'의 주인공
편식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 황성수의 병 안 걸리는 식사법, 현미밥채식

MBC스페셜 '목숨 걸고 편식하다', '편식으로 고혈압잡기'에 소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현미밥채식의 영양 가치와 섭취법, 질병 예방 및 치유효과를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인 황성수 박사는 잘못 먹어온 음식 때문에 혈관에 병이 생긴 환자들을 치료하는 신경외과 의사다. 그는 자신을 찾는 환자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20여 년 가까이 현미밥채식을 제공해왔으며, 그의 처방대로 고기·생선·우유·계란과 같은 동물성 식품을 끊고 현미밥채식을 실시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복용해오던 약을 끊고 건강을 회복했다.

곡식과 채소의 섭취가 줄고 동물성 식품의 섭취가 늘어나면서 고혈압, 당뇨병, 비만, 심­뇌혈관병, 대장암 등의 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건강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며 방법을 찾을 뿐, 그 전에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 책은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현미밥채식이 사람의 몸에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며 동물성 식품이 왜 건강을 해치는지, 평생 현미밥채식을 즐기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제공한다.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김연수, <꾿빠이, 이상>


꾿빠이, 이상
김연수
90년대 신세대 작가 중 가장 이지적인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는 저자의 장편소설이다. 1930년대에 활동했던 천재 작가 '이상'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이상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실제 기록과 그의 작품을 인용하는 한편, 이상의 유실된 데드마스크와 가상의 시, 상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켜가며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씨기의 실험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저자는 이상이 남긴 비밀을 추적해가는 지적 추리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동시에, 진짜와 가짜, 실재와 허구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어떤 배우가 완벽하게 무대 인물로 바뀌었을 때, 우리는 그 무대 인물에게서 배우를 분리해낼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그 무대 인물을 가리켜 가상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상의 존재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무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무대 위에서 그 배우는 사라진다.

백운산으로 이르는 오솔길로 한참 걷다가 후박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봤다. 지형과 지도로 짐작건대 능선으로 바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정상에 다다르고 싶었던 나는 그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약초 캐러 다니는 길인 듯, 한 500m쯤 가서 그 길은 끊겼다. 길이 끊어진 그 곳은 가파르긴 해도 바로 능선 아래쪽이었다. 나는 능선을 향해 필사적으로 올라갔다. 한 한 시간을 걸었을까, 능선에 이르러 한숨을 내쉬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어가다 보니 후박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이 보였다.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온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산악인들이 흔히 링반델룽이라고 말하는 경험이었다. 다시 지도를 펼치고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지도 상에서 되짚어갈 수 없았다.

파스칼은 종교적인 신앙심을 수학 공식으로 남겼다. 한 사람이 선행을 쌓아서 천국으로 들어갈 확률은 아무리 작다 해도 유한한 값을 가진다. 반면에 종교가 보장하는 가치는 무한하다. 이 둘을 곱하면 무한한 기대값이 나온다. 그러기에 명민한 도박꾼이라면 누구라도 종교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 <데드마스크>


탐침하듯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저처럼 광활한 운명의 땅에 드리우며 미래를 예측한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형성시킨다. 운명이 아무리 광대하고 폭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만은 그 운명과 맞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맞선다고 할 때, 맞서는 그 대상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번이라도 전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의지가 맞서는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의지 자체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끊임없이 남빛의 바다를 하얀 물보라로 바꾸는 뱃길 주변에서는 아무리 해도 당장 대양의 권태로운 푸른빛이 보이지 않듯이 인간의 의지 역시 삶의 여러 굴곡 중 하나일지 모른다. 때로 파도가 치고 남빛 대양의 한켠이 하얀 물보라로 부서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일 뿐이다. 운명한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실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 <잃어버린 꽃>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문학은 몰락의 에티카(윤리)다

시인과 소설가들이 환영하는 젊고 발랄한 비평가가 출현했다. '제2의 김현'이라는, 귀가 솔깃하다 못해 자리를 박차고 직접 확인해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극찬이 들려온다. 비평이 더 이상 창작에 열등감을 갖지 않게 된 것도 그의 덕이라는 놀라운 찬사도.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다른 것일까. '혜성과도 같은 신예'라는 수식어와는 달리 등단한 지 4년이 되어서야 그의 첫 평론집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쉽고 친절하며, 재미있기까지 한데다 아주 유려한 문체를 구사한다는 그의 비평을 확인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로까지 느껴진다.

저자는 시와 소설, 근대와 현대, 작품과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가 한국문학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들을 곳곳에 마련한다. 김영하, 강영숙, 박민규, 김훈, 박상원, 배수아의 작품을 통해 90년대 이후 이념이 사라진 한국문학계에 어떤 삶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인지를 묻는 윤리학의 출현을 살피고 있으며, 2000년대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모험을 옹호하기도 한다. 한국 현대시사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상, 윤동주, 김수영, 황지우, 오생근, 김혜순의 시 혹은 시론을 다루기도 하며, 그간 단행본에 수록된 해설들을 적절히 골라 묶기도 하였다.

이렇게 정리된 한 권의 책을 읽고나면, 저자가 문학에 걸고 있는 희망과 애정,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것을 한 문자으로 정리한 것이 '몰락의 에티카'이다. 온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이것이 몰락 이후 문학이 보여줄 첫 번째 표정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에티카(윤리)다. “윤리적으로 급진적인 소설들이 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한국문학의 영토를 넓혀가는 새로운 상상력의 촉수 김연수 신작 소설집!

김연수. 이보다 더 ‘삶-이야기’를 갈망하는 작가가 또 있었던가. ‘나’의 이야기를 찾아 끊임없이 제 안으로 향했던 작가의 눈과 귀와 가슴은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향해, ‘세계’를 향해 더 크게 열려왔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2005년 봄부터 2009년 여름까지 씌어진 아홉 편의 ‘이야기’ 속에는 어느 날 문득,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지는 ‘세계/나’와 거기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한쪽 끝에서 무너진 그 세계가 다른 한쪽 끝과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밑줄을 긋게 만드는 밀도 높고 아름다운 문장, 우아하고도 재치있는 농담과 유머, 그리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진지한 문제의식은 여전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위로받는다. 그가 기억하는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해야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이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_김연수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쉽게 위안받을 생각하지 말고 삶을 끝까지 쫓아가란 말이야!"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리 선생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그는 합리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려는 생각이 결국에는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 선생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가짜 여권을 사들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게 예정됐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렇다면 다른 이유를 찾았을 것이라는 뜻에서다. 결국 인생이란 리 선생의 공책들처럼 단 한 번 씌어지는 게 아니라 매순간 고쳐지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논리적으로 회고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예견할 수는 없다는 것.
 -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알래스카 코르도바에 마리 스미스라는 에야크 인디언이 살아. 이 지구상에서 에야크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인간이야. 사람들이 그 소감을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대. '그게 왜 나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건지 나는 몰라요. 분명한 건 마음이 아프다는 거죠. 정말 마음이 아파요.' 듣는 사람이 없으면 말하는 사람도 없어. 세계는 침묵이야. 암흑이고."
 - <달로 간 코미디언>

에이타, 차세대 오다기리 조가 아닐까?


  요즘 보고있는 일본 드라마가 <라스트프렌즈>다. <구구는 고양이다>에서 테로와 비슷한 고양이를 안고 다녀서 얼굴을 익힌 우에노 쥬리나 아이바 마사키와 사귄다는 미즈카와 마사미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배우는 단연 에이타다. 그러고보니 <사쿠란>에 나왔었구나.
 굉장히 잘생겼다거나 몸매가 훌륭한 것 아니지만 일관된 존재감이 있고, 연기력도 괜찮다. 여기에 反마초적 섬세함, 조용하고 울림있는 목소리, 히피 스타일, 존재의 불안을 드러내는 표정들이 합쳐져 오다기리 조를 떠올리게 한다. 잘 성장하면 오다기리 조 같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라나?

2010년 3월 6일 토요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9월호

Riskology (리스크學)

인간 사회가 갈수록 늘어나는 유행병들을 담아내는 저장고 구실을 할수록 우리는 인간 종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권력과 상대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셸 푸코가 말한 것보다 더욱 명확한 보편적 바이오 권력이 그것이다. (- 갈리마르, <앎의 의미>, 1976)


2010년 3월 3일 수요일

일본 드라마?

 <유성의 인연>을 보고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딱히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미뤄두었다. <유성의 인연>을 비롯해, 일본 드라마들은 나에게 조금 답답하고 미진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더욱이 일본 드라마는 10편이면 끝나기 때문에, 즐기는 건 좋으나, 언제나 나에게 '뭔가 2% 부족한데' 라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 드라마에 비해 시청자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약하다고나 할까.
 특유의 가벼움과 유머감각, 황당하고 단순한 전개는 일본 드라마의 매력임과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하얀 거탑>, <그들이 사는 세상> 혹은 <The L Word>, <The West Wing>과 같이 캐릭터와 스토리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을 즐기는 나로서는 일본 드라마를 진심으로 '즐기기'가 힘들다.

 마츠모토 준이야 그럭저럭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럭저럭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보면 되지만, 쟈니스 중에서도 연기 잘한다고 정평이 난, 클리트 이스트우드의 극찬까지 받았던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경우, '이게 잘하는 거 맞지?' 라는 의심아닌 의심과 함께 보게 된다. <유성의 인연>에서도 잘 하는 것 같긴 한데, 한국이나 헐리우드의 영화/ 드라마처럼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콩트도 했다가, 코미디도 했다가, 상황극도 했다가 하니 이런 상황에서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 각 장면에 맞게 캐릭터를 재빨리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해서 변화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캐릭터의 감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 (적어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시청자에게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 헷갈리는 것이다. 더더욱 니노의 경우, 버라이어티의 이미지가 나에게 강하게 남아있어서 몰입이 더더욱 힘들었다.


<라스트프렌즈>


 아직 1편을 봤을 뿐이고, 앞으로의 전개가 너무 기대되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