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1일 수요일

평범한 감동의 미덕, <The Blind Side>

 













날씨 좋았던 봄날, 4월 17일 신림 롯데시네마에서 혼자.

 

 


 
 잘 짜여진 스토리와 플롯을 통해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가 평범하게 지나왔던 일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변화를 위한 의지를 다지게 만든다. 그 대척점에는 <블라인드 사이드> 처럼 평범한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자는 메시지를 외치기 보다는, 평범하고 소소하게 개인들의 사랑과 믿음을 강조하고, 인간들 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통해 감동을 준다.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정작 영화 속 인물들은 드러내놓고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도, 오히려 그 담담한 태도가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마이클은 표정이 없는 아이다. 자신이 슬퍼하거나 아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리앤의 가족의 되면서 웃게 되고, 화내게 되고, 자신의 기분을 말하게 된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순간 순간에서 클로즈업되는 마이클의 표정과 눈빛이 눈물짓게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산드라 블럭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힘은 거의 모두 그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운 겨울날 반팔을 입고 체육관으로 걸어가는 마이클을 보고 '충동적으로' 데려와 먹이고 재우고, 그리고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입양을 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 대학까지 보내는, 매우 이상적이고 동시에 비현실적인, 우리 같은 범인으로서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의 의문을 자아내는, 대범하고 의리있는 여성이 산드라 블럭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현실감을 획득하면서 영화를 살릴 수 있었을까. (물론 그래서 잠깐 '합리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리앤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마이클을 보살피는 동안, 다른 가족들은 정말 아무런 불만이 없었을까, 남편과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저토록 일말의 갈등없이 리앤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랐을까. 정말 복받을 가정이네.')

 물론 굉장히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적 배경에 비해 영화의 스토리와 플롯은 매우 단순하게 '감동적으로' 흘러간다. 이 것은 영화의 힘이자 동시에 한계이다. 미국 남부에서의 인종 갈등, 제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마이클과 같은 아이들, 럭비와 같은 백인 스포츠 업계에서의 인종 차별. 영화는 이 모든 배경들을 흐리게 처리하고 오로지 리앤과 마이클 사이에 흐르는 믿음과 애정의 흐름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결국 영화는 현실 속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설화' 가 되어버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단다. 그리고 마이클 오어는 실제로 현재 리그에서 뛰고 있는 프로선수란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은 마이클 오어와 리앤 가족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마무리된다.

 미국의 역사적 힘인 '보수주의'가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의 이상형을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아주 당연하게 보수주의적 세계관과 가치를 배경으로 깔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답게만'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미국 보수주의에 감동하게 찬양하도록 한다. 미국 공화당의 텃밭인 테네시 주에서 부유하게 살면서, 백인 스포츠인 럭비에 목숨을 걸고, 태어나서 가톨릭은 거의 본 적 조차 없는, 독실한 개신교도들인 리앤 부부의 선행이야말로 미국 보수주의의 진실이라는 듯이.

 그러나! 수많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메마른 나에게 가슴 충만한 감동을 준 영화다.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특히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 않는 담백함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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