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3일 월요일

사랑하는 능력의 부재

우르술라는, 자신이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혹독한 전쟁에 시달려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누구를 결코 사랑해 본 적도 없었고, 아내 레메디오스나 그의 삶을 스쳐갔던 셀 수 없이 많은 하룻밤의 여자들도 결코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의 아들들은 훨씬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상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전쟁을 치렀다거나,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전쟁에 지쳐서 무한한 승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은 이유, 즉 죄 받아 마땅한 그 특유의 오만 때문에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우르술라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도 있는, 그런 아들이 사랑을 하는 데는 무능한 한 남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2010년 9월 8일 수요일

다테야마 알펜루트 - 일본의 알프스


"도야마현 다테야마 알펜루트... 나가노 올림픽열렸던 나가노 현 옆인데...
일본 알프스라고 불릴만큼 산악지대에요...
도야마시 가면 그 흔한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도 없구요...
3,000m 정상에 올라서 바라보면 그동안 날 못살게 했던 사람들과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거에요...
그리고 걷는거 안 좋아하면 버스타고 올라가면 되요..."

위치우위, <유럽문화기행>


유럽문화기행 1
위치우위 저/유소영,심규호 공역
오늘날 유럽은 몇 십 년 전의 외상값을 갚아버리고 마음 편히 낮잠을 즐기는 노인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문명발달의 한계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고통스러운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유럽은 본래 거칠고 강인한 생명력의 원형을 지니고 있었다. 이 늙은 권태는 어디서 연유하는가.

모든 위대함의 집결지 로마, 평생의 호적수 다빈치와 라파엘로가 사라진 뒤 실의에 빠져 숨진 미켈란젤로의 안식처 피렌체,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를 낳고도 끝내 인정해주지 않던 몰이해의 도시 더블린,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수많은 사르트르의 도시 파리,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를 행려병자로 잃은 탄식의 현장 바르셀로나, 렘브란트를 냉대한 빛의 도시 암스테르담, 셰익스피어를 폄하하던 위선적 지식인들의 대학 도시 옥스퍼드 등지에서 유럽정신을 되묻는다.

김영하, <퀴즈쇼>


퀴즈쇼
김영하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산에는 비유가 현실이 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김영하. 이 책은 도시적 감성의 대표작가인 그의 청춘소설이라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의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성장담이자 연애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5.18 광주의 해에 태어났고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으며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세상을 경험한 1980년생이 바라보는 2007년 한국 풍경을 그려냈다.

주인공 이민수는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할머니가 남겨놓은 빚 때문에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된다.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던 그가 인터넷채팅 '퀴즈방'에서 TV퀴즈쇼 구성작가인 서지원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주인공 민수를 통해 현대인의 소통 단절과 고독 등을 느낄 수 있다.


"기회는 신선한 음식 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차라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게 더 나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이게 제일 나빠."

우리는 책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책이 우리를 보는 건지도 몰라. 책이 인간을 숙주로 삼아 잠시 머물다가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나는 것일지도.

마술사들은 앞에 있는 관객에게 카드를 고르게 함으로써 속임수를 감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싶게 믿어버리고 심지어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나가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내가 낼게."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잘 아는 것처럼."
 "꼭 경험해봐야 아나? 소설 같은 데 많이 나오잖아. 갑자기 인생에 환멸을 느끼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사람들 이야기."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 너는 왜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말해? 사실은 다 책에서 본 것들이면서 …… 아니야?"

 "너는 달팽이처럼, 지식이라는 딱딱한 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아."

 "말해본 적은 있어?"
 "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응, 입 밖에 내서 말해본 적 있냐구. 한 번이라도."
 "음 …… 있는 것 같은데."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황당한 소망들을 늘어놓으며 그 순간을 모면해왔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충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렇다. 사람들은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할 말이 없으니 그런 뻔한 질문들을 던질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취직했냐, 결혼 안 하느냐 묻는 것도, 사실은 아무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누가 나에 대해서 물으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줄 알고 온 힘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그저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는 거였다. 적당한 대꾸만 해주면 그들은 즉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뻔한 질문만 입력된 사이보그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사이보그들은 젊고 만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단 몇 개의 질문으로 버틴다. 넌 취직은 안 하냐, 국수는 언제 먹냐 등등. 그럴 때는 그냥 딴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언제나 "취직이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저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게 우선인 것 같아서요. 그럼 취업도 자연히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말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런 사이보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냥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었는데.

 남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만의 언어로 지은 작은 성에 자존심을 모셔두고 어려운 말과 험악한 분위기로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 으르렁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장군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내가 볼 때 너는 정신적 불구야. 완벽하게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어. 하긴, 그것도 다 지 팔자지."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지원은 '사랑하니까 이해한다' 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사랑은 사랑이고 이해는 이해고, 그러니까 그것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건 내 이야기야.' 라고 감탄하며 읽다가도 문득 문득 의구심이 든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우리는 원래 이렇고, 그렇게 자라왔어. 지금 사회가 잘못된 거지, 우리 잘못은 아냐.'

 그리고 문학의 동시대성이 가지는 가치.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현 시점의 감성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문학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 가치를 가지게 되나?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이윤기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청준, <벌레 이야기>


벌레 이야기
이청준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죽음의 한 연구 (상)
박상륭
기독교,불교,연금술,설화 등의 우주관을 공통된 구조로 보면서 죽음을 통해 불멸적인 인신의 구극을 완성하는 고행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구현하는 장편소설.

카를 구스타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저/A. 야페 편/조성기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은 심리학의 거장이자 삶을 치유하는 영혼의 의사였지만 살아있는 세상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카를 융, 최후의 자서전이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 카를 융

이 책은 융의 제자이며 여비서였던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으로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자서전은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선명히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평생을 사로잡은 꿈, 죽음을 앞두고 경험한 환상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그것을 분석하고 의식화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카를 융은 외적인 사건이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융의 견해에 따라 자서전은 내적 사건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카를 융 자신 생애의 특이성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2010년 9월 3일 금요일

이희재, <번역의 탄생>


번역의 탄생
이희재
"번역이란 외국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한국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2008 우수저작 및 출판 지원사업' 당선작.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공시적이고 통시적으로 바라보면서, 단순히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깊숙이 언어 구조의 차이를 들여다본다. 기존 번역 지침서가 어구를 옮기는 번역의 기술에 치중하면서 하나하나의 테크닉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뿔뿔이 흩어진 단편적 문제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번역의 기본 원칙과 우리말에 대한 이해에 대해 정리된 안목을 일관되게 제시한다.

저자는 번역을 ‘들이밀기’와 ‘길들이기’로 나눠 생각한다. 들이밀기는 출발어, 즉 원어를 중시하는 직역주의 정신에 충실하다. 길들이기는 도착어, 즉 자국어의 표현을 중시한다. ‘들이밀기’와 ‘길들이기’는 저자의 오랜 번역 경험이 도달한 새로운 번역 개념이다.

한국어는 대명사보다는 명사를 선호하고, 명사보다 동사를, 형용사보다 부사를 중시한다. 한국어는 교착어이기 때문에 어미와 접사를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고, 또한 존칭어가 발달했다. 이러한 한국어의 특징을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일본어와 견주고 분석해 차이를 이론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처럼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어가 지닌 개성을 더욱 풍요롭게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서구 이론가의 추상적 틀이 아닌 한국어 현실에서 출발한 이론 틀과 구체적 삶에 뿌리를 둔 한국어 재창조의 방법은 번역가뿐 아니라 우리글을 올바르고 아릅답게 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