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8일 수요일
김영하, <퀴즈쇼>
"기회는 신선한 음식 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차라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게 더 나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이게 제일 나빠."
우리는 책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책이 우리를 보는 건지도 몰라. 책이 인간을 숙주로 삼아 잠시 머물다가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나는 것일지도.
마술사들은 앞에 있는 관객에게 카드를 고르게 함으로써 속임수를 감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싶게 믿어버리고 심지어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나가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내가 낼게."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잘 아는 것처럼."
"꼭 경험해봐야 아나? 소설 같은 데 많이 나오잖아. 갑자기 인생에 환멸을 느끼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사람들 이야기."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 너는 왜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말해? 사실은 다 책에서 본 것들이면서 …… 아니야?"
"너는 달팽이처럼, 지식이라는 딱딱한 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아."
"말해본 적은 있어?"
"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응, 입 밖에 내서 말해본 적 있냐구. 한 번이라도."
"음 …… 있는 것 같은데."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황당한 소망들을 늘어놓으며 그 순간을 모면해왔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충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렇다. 사람들은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할 말이 없으니 그런 뻔한 질문들을 던질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취직했냐, 결혼 안 하느냐 묻는 것도, 사실은 아무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누가 나에 대해서 물으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줄 알고 온 힘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그저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는 거였다. 적당한 대꾸만 해주면 그들은 즉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뻔한 질문만 입력된 사이보그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사이보그들은 젊고 만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단 몇 개의 질문으로 버틴다. 넌 취직은 안 하냐, 국수는 언제 먹냐 등등. 그럴 때는 그냥 딴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언제나 "취직이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저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게 우선인 것 같아서요. 그럼 취업도 자연히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말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런 사이보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냥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었는데.
남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만의 언어로 지은 작은 성에 자존심을 모셔두고 어려운 말과 험악한 분위기로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 으르렁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장군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내가 볼 때 너는 정신적 불구야. 완벽하게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어. 하긴, 그것도 다 지 팔자지."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지원은 '사랑하니까 이해한다' 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사랑은 사랑이고 이해는 이해고, 그러니까 그것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건 내 이야기야.' 라고 감탄하며 읽다가도 문득 문득 의구심이 든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우리는 원래 이렇고, 그렇게 자라왔어. 지금 사회가 잘못된 거지, 우리 잘못은 아냐.'
그리고 문학의 동시대성이 가지는 가치.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현 시점의 감성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문학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 가치를 가지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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