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2일 목요일

보기 드문 수작, <천하장사 마돈나>














정말 오래 전에 쓴 영화 리뷰. 지금 다시 보니 가득한 허세가 마구 느껴진다.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잘 썼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성민이가 그대로 복사+붙여쓰기하여 어떤 교양 수업에 레포트 발표했다고 함. 선생님이 칭찬까지 하셨다고.




<천하장사 마돈나>는 간만에 보는 수작이다. 이해준, 이해영 두 감독은 <안녕! 유에프오>, <남극일기> 등의 시나리오 작가였다는데,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2시간여 동안의 상영 동안 내내 정말 팽팽하게 재미있었다. 적당히 심각하고 영악하게 마무리 하는 성정치 영화가 이 정도로 만들어 졌다는 건 정말 의미가 있다.

 

 

1. 류덕환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 바로 동구. 류덕환 <웰컴 투 동막골>에 나왔다는데, 현재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래 쟤가 저런가싶을 정도로 여성성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형상화해서 너무 감탄스러웠다. 말은 또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온몸으로 연기하고 있어서, 얼굴 말고 몸만 봐도 얘가 수줍어 하고 있구나가 느껴진다. 요즘에는 그 또래 여자아이들도 그렇게 섬세하고 통상적인 여성스러움을 구현해내기 힘들텐데, 엄마도 부재하면서 어쩌면 저렇게 아이가 예쁘게 컸는지 보는 내내 신기했다.

 류덕환은 대단하다. ‘동구를 벗겨놓고 보면 키도 작고, 그다지 잘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20대 남자이지만, 화면 속에서의 폭발력은 대단하다. 초경을 하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몽정을 했을 때, 울면서 팬티를 빠는 동구의 장면. 등까지도 연기를 하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이 장면은 <다세포소녀>의 두눈박이가 포르노를 보고 발기를 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2. 아버지, 가족

 

 두 감독 중 하나가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뒤집어서 날려버리고 싶다는 환타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나는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환타지는 우리 세대 또한 여전히 안고있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에 대한 부담감과 거부감을 제대로 찌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구와 아버지의 관계는 파격적이지만 현실적이고 여운이 남게 종결되었다. 한국 영화는 마초아버지의 자식사랑을 그동안 너무 미화해오지 않았는가. ‘아버지가 마초이고 폭력적이고 찌질하긴 하지만, 자식들을 무한히 사랑하며, 고로 가족은 사랑으로 아버지를 감싸안아야 한다는 식의 휴머니즘은 이제 지겹다.

 가족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가족에게도 불가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 상정되는 무한한 가능성때문에 우리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리고 누나, 형이 살해되는 것은 아닐까. 서로 지원하고 이해해주어야 하는, 그렇게 하기로 선천적으로 규정되는 관계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형제끼리, 부모끼리 접점을 찾지 못하고 뱅뱅 도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도, 이런 이야기는 스크린에서 금기시된다. 그것은 한국영화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부장성, 마초성에도 기인한 바가 크겠지만, 가족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 장치가 그동안 부재했다는 것도 원인이다. 인간을 규정짓는 모든 단어가 무기력하듯이 가족 또한 그렇다. 나와 아버지, 어머니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거대한 동그라미 속에서 일부는 부정하고, 일부는 무시하고, 일부는 못본 척하고, 일부는 사랑하고, 일부는 이해한다. 이 미묘복잡한 관계를 언어로 풀어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재미있게 보았던 <가족의 탄생>은 이 일을 가족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해결했다. ‘가족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 현재까지의 개념을 재조정한 것이다.

 반대로 <천하장사 마돈나>는 동구의 가족을 그대로 직시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간다. 동구를 살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동구를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가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이다. 아버지가 전체적으로 무능하고 폭력적이고 문제적인 인간이지만, ‘성전환이라는 성정치적 문제에 대한 견해는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는 그 인간에 대한 무시라기 보다는 인정이다. 그것이 비록 왜곡된 남성성에 의해 변형된 것이라 할지라도. 영화가 이 다름에 대해서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갈라서는 것 밖에 없다. 서로 영원히 평행선일 테니까. 사랑은 같음만큼이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일지 모른다. 마지막 동구의 ‘Like a Virgin’ 무대에서 아버지가 뒤에서 옅은 웃음을 띄우며 동구를 바라봤다면, 오히려 그 결말이 더 억지스러웠을 것 같다.

 

 

3. 어머니, 가족.

 

 영화 줄거리의 두 축은 동구의 가족과 씨름이다. 그래서 씨름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예쁜 아이 동구의 가족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기에 서술이 길어진다. 인간이 스스로 가지는 자존감은 10대 이전의 성장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형성된다고 한다(어디서 주워들었다). 주로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를 파생시켜 준 사람과의 유대를 통해서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동구는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컸을까. 어떻게 저렇게 씩씩하고 발랄할 수가 있을까.

 이상아는 동구 어머니 역에 제격이었다. 그는 이 영화의 촬영 이후 인터뷰에서, 왕년의 스타였다가 조연으로 추락한 자기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지만 도리어 이상아가 느끼는 그런 감정이 연기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동구 어머니 수정은 그런 사람이니까. 같이 본 친구는 이상아 얼굴을 클로즈업 할 때마다 자신도 울컥하더라고 그랬다.

 왜 어머니는 이해하는데, 아버지는 그렇지 못할까. 우리가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등등에서 보는 거의 모든 현실에서 가족들은 그렇다.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트렌스젠더인 자녀를 지원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게이, 트렌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해 남성보다는 여성의 포용성이 더 크다는 수치를 본 적이 있다. 여성 또한 소수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도 여성이라서 그런 걸까. 답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혹시 동구가 딸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동구와 동구 어머니의 대화는 딸과 엄마의 대화이다. 내가 알기로 아들들은 어머니와 그런 식의 관계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물론 딸이라고 모두 그런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해할 수 있었던 걸까.

 

 

4. 씨름부.

 

 씨름부 애들이 나오는 장면은 정말 재밌다. 까르르 넘어갈 정도로. 겨드랑이가 민감한 애는 어쩌다 씨름을 하게 되었을까. 성적 흥분을 느끼면 쇼트트랙 자세를 취하는 애는 정말 영화내내 한마디도 안 하는데, 신기하게도 뭔가 계속 연기를 하고 있다. 문세윤은 정말 귀여웠다. 대사를 하면 웃찾사 분위기가 난다. 본인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계산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입에 그렇게 붙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동규의 체취를 좋다고 맡아보는 장면이나, ‘나 너 때문에 자꾸 헷갈릴라 그래라는 대사를 뱉은 문세윤의 표정은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었다. 몸이 큰 애들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있구나. 이제 살쪄도 귀엽게 찌도록 하자.

 마지막 결승전, 동구가 이길까, 이언이 이길까. 결말을 예측할 수가 없어서 정말 흥미롭게 보았다. 난 솔직히 이언이 이겼으면 했다. 씨름선수로서 이언의 개인적인 고민도 굉장히 심각해보였기 때문이다. 이언은 고3이지만, 동구는 아직 고1이니까, 내년에 우승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뭐 동구가 이겼다. 그리고 동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

 씨름부가 신선했던 이유는 모두 동구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갈등이 있지만(특히 이언과), 그들은 동구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것은 동구가 워낙 예쁘고 누구나 좋아할 아이이기 때문일까. 한창 마초성에 길들여져서 과도한 남성성에 취하는 그 또래 남자아이들과 달리 어쩌다가 씨름부는 동구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 자신들이 뚱뚱한 일종의 소수자라서 그랬나. 나는 이 부분이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동구의 절박함과 희망이 누군가에게 이해되고 사랑받는 그 순간. 그래서 그들은 모두 동구의 공연에 가지 않았나. 문세윤은 장미꽃다발까지 들고.

 모두가 백윤식의 카리스마를 칭찬하지만, 나는 그저 그랬다. 항상 중요한 순간에 똥이나 싸는감독이 신선하고, 동구를 알아봐주고 이해하는 스승으로서의 그는 멋지다. 하지만 강렬한지는 모르겠다. 항상 똥만 싸고 있어서 얼굴 클로즈업도 몇 컷 안 나온 것 같다. .

 

 

5. 소수자

 

 ‘지금까지 계속 스스로가 사회적 소수자라서 동구를 이해한 걸까의 물음. 못된 인간은 절대로 자신과 다른 부류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최대한 너그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이해해의 말은 상관하지 않겠다의 다른 표현이다. ‘너를 설득하려 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배려이다. 계급을 뛰어넘는, 성적 취향을 뛰어넘는 이해와 사랑이 가능할까. 남성 페미니스트는 정말 존재 할 수 있을까. 부르주아 맑시스트는 허식이 아닐까. 이성애자인 게이 인권운동가는 진정일까. 나는 내가 이해한다, 인정한다고 말하는 소수적 존재들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항상 궁금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단위를 넘어서 다른 단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상대방의 존재가 가지는 근본적인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까. 여기까지가 내 인식의 한계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궁금하다.

 

 

나는 <왕의 남자>를 보고 난 주변사람들의 반응에 놀랐다. 성별, 가치관, 나이에 따라 반응이 너무 판이하게 달라서. 물론 <천하장사 마돈나> <왕의 남자>보다 훨씬 더 발랄하지만 더 심각하다. 그리고 건드리는 문제의식도 훨씬 더 깊숙하다. 관객이 얼마나 들지 궁금하다. 내가 영화 보는 내내 옆에 앉은 커플 관객은 쟤 왜 저래? 미쳤어?’를 연발했다. 나는 추천하고 싶지만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일본식 막장드라마, <사요나라 이츠카>
















 2010년 4월 21일 용산 CGV에서 동천이와.


 

 스치면서 본 예고편의 여주인공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괜히 보고싶었다. 감독 이름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고, 츠지 히토나리야 워낙 유명한 작가고, 적어도 범작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며 벼르고 별러 본 영화다.

 그러나!
 영화 시간 내내 실소만 자아내는 막장드라마.

 첫째, 이 두 사람이 왜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에 빠졌는지도 잘 모르겠고,
 둘째, 왜 25년동안 연락 한 번 안하고 그리워했는지 모르겠고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나의 '한국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커뮤니케이션 단절 상태가 종종 나온다. 아이바 마사키의 <마이걸> 처럼),
 셋째, 여자가 남자에게 반한 이유라는 꿈이라는 게 - 항공회사의 사장이 되어 자신의 비행기로 지구의 하늘을 채울 것이라는 - 그렇게 매력적인지도 잘 모르겠고,
 넷째, 방콕 지사의 지사장과 직원 둘이 25년 후에 각각 사장, 부사장이 되는 것이 가능한 지도 잘 모르겠고,
 다섯째, 여자는 그렇다면 '본처-첩' 컴플렉스에 못이겨 떠난 것인지,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어서 떠난 것인지도,
 여섯째, 도대체 이 여자는 왜 돈이 많았던 것이며, 25년 후에는 왜 또 그렇게 몰락했던 것인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모르는 것이 참 많았던 영화였다.

 또한, 어이없는 스토리로 개연성 없는 모든 이야기들을 쑤셔넣는 막장드라마처럼, 이 영화에서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순간 순간 지나갔다.

 1. 본처 - 첩 컴플렉스
 2. 25년 간 남자의 부인이 '사악하게도' 혼자 간직해 온 비밀
 3. 세대 갈등
 4. 중년 세대의 잃어버린 꿈
 5. 1980년대 엔고현상이 발생하면서 시작된 일본의 동남아시아 개척
 6. 일본인들의 야구 사랑

 딱 하나 볼 것이 있었다면, 일본 민족에서는 정말 백만명 중 한 명 정도 태어날 것 같은 몸매의 소유자였던 두 주인공.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남자 주인공 - 니시지마 히데토시 - 참 멋지더라. 조각 같이 잘 생긴 얼굴은 아니나, 분위기 있는 풍모와 몸매에 반해버렸다. 일본에도 은근히 멋진 중년 남자 배우가 많은 것 같더라.

덧. 이건 순전히 사족으로, <씨네21>에서 이 영화와 관련된 스틸 사진을 보다가 든 생각.
     이재한 감독은 내가 본 영화감독 중에 스틸 사진에 가장 많이 찍힌 감독.
     사진마다 범상치않은 포즈를 취한 이재한 감독을 보고 '겉멋이 좀 든 타입이네' 라는 생각이 듬.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평범한 감동의 미덕, <The Blind Side>

 













날씨 좋았던 봄날, 4월 17일 신림 롯데시네마에서 혼자.

 

 


 
 잘 짜여진 스토리와 플롯을 통해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가 평범하게 지나왔던 일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변화를 위한 의지를 다지게 만든다. 그 대척점에는 <블라인드 사이드> 처럼 평범한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자는 메시지를 외치기 보다는, 평범하고 소소하게 개인들의 사랑과 믿음을 강조하고, 인간들 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통해 감동을 준다.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정작 영화 속 인물들은 드러내놓고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도, 오히려 그 담담한 태도가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마이클은 표정이 없는 아이다. 자신이 슬퍼하거나 아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리앤의 가족의 되면서 웃게 되고, 화내게 되고, 자신의 기분을 말하게 된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순간 순간에서 클로즈업되는 마이클의 표정과 눈빛이 눈물짓게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산드라 블럭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힘은 거의 모두 그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운 겨울날 반팔을 입고 체육관으로 걸어가는 마이클을 보고 '충동적으로' 데려와 먹이고 재우고, 그리고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입양을 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 대학까지 보내는, 매우 이상적이고 동시에 비현실적인, 우리 같은 범인으로서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의 의문을 자아내는, 대범하고 의리있는 여성이 산드라 블럭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현실감을 획득하면서 영화를 살릴 수 있었을까. (물론 그래서 잠깐 '합리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리앤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마이클을 보살피는 동안, 다른 가족들은 정말 아무런 불만이 없었을까, 남편과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저토록 일말의 갈등없이 리앤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랐을까. 정말 복받을 가정이네.')

 물론 굉장히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적 배경에 비해 영화의 스토리와 플롯은 매우 단순하게 '감동적으로' 흘러간다. 이 것은 영화의 힘이자 동시에 한계이다. 미국 남부에서의 인종 갈등, 제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마이클과 같은 아이들, 럭비와 같은 백인 스포츠 업계에서의 인종 차별. 영화는 이 모든 배경들을 흐리게 처리하고 오로지 리앤과 마이클 사이에 흐르는 믿음과 애정의 흐름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결국 영화는 현실 속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설화' 가 되어버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단다. 그리고 마이클 오어는 실제로 현재 리그에서 뛰고 있는 프로선수란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은 마이클 오어와 리앤 가족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마무리된다.

 미국의 역사적 힘인 '보수주의'가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의 이상형을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아주 당연하게 보수주의적 세계관과 가치를 배경으로 깔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답게만'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미국 보수주의에 감동하게 찬양하도록 한다. 미국 공화당의 텃밭인 테네시 주에서 부유하게 살면서, 백인 스포츠인 럭비에 목숨을 걸고, 태어나서 가톨릭은 거의 본 적 조차 없는, 독실한 개신교도들인 리앤 부부의 선행이야말로 미국 보수주의의 진실이라는 듯이.

 그러나! 수많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메마른 나에게 가슴 충만한 감동을 준 영화다.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특히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 않는 담백함이 반가웠다.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새로운 귀요미, 베이



 새로운 귀요미, 베이.
 San Francisco의 Bay area에 가서 살자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정말 인형처럼 깜찍하게 생겼다. 발도 분홍색이다.
 3개월 정도 되었나? 테로의 1/5 정도 되는 몸집으로 발발거리면서 헤집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테로와는 달리 혈통증명서도 있는 러시아블루 순종.
 테로를 데려온 가격의 아무리 큰 상수를 곱해도 절대 나오지 않는 가격의 소유자.
 (테로의 가격이 0 이므로)
 이 아이 덕분에 나의 봄 옷 쇼핑은 물 건너 갔다.

 발랄하고 쾌활한 첫 인상과는 달리 이튿날 적응이 좀 되자 테로에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첫 날 테로가 하악댈 때 머뭇거린 것은 단순히 간을 좀 본 것이었다!
 테로가 서열 3위로 내려갈 것인지, 서열 2위 자리를 지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만간 테로와 베이, 베이와 테로에 대한 포스트 하나 올리겠다.
 원래 테로도 품종(!)과 나이에 비해서는 굉장히 관리가 잘 된 몸매의 소유자인데, 갑자기 베이와 비교하니 몸집이 매우 큰 거구로 보인다. 베이는 다 커도 아마 테로보다 작을 듯.
 
 아, 어쨌든 나는 만년 서열 꼴찌인가.